요즘은 베이비샤워 대신 정자은행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미국 매체에 따르면 결혼 없이 정자 기증을 통해 아이를 갖고 혼자 양육하는 이른바 '선택적 싱글맘'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수년간 무의미한 데이트, 한심한 남자들을 만나는 것에 지친 여성들, 더 이상 결혼을 위해 헛된 노력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정자은행과 난임 클리닉은 기증자의 키, 체중, 학력, 직업, 성격, 가족 병력, 유전 질환 검사 결과 등을 제공하는데, 이용 여성들은 이 정보를 일종의 아버지 프로필처럼 비교하고 골라서 기증받는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흐름을 따라 결혼제도가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현재의 결혼제도는 구속과 소유, 억압에 가깝기 때문에 순수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과거에는 전통이자 필수였던 결혼이 이제는 수지타산을 따져가며 셈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결혼제도가 직면한 문제로서 주거 안정의 불안정, 고비용 혼수와 웨딩 문화 때문에 1인 가구로서 누리던 삶의 질이 결혼 후 오히려 저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맞벌이가 필수인 요즘에는 결혼과 동시에 출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로인해 가사와 육아라는 실질적 부담을 느끼게 하고, 여성이 가진 경력의 소멸과 사회적 단절을 요구한다. 더구나 서로 사랑해서 선택한 결혼이 실제로는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는 전통적인 문화 때문에 고질적인 시댁·처가 갈등과 같은 정서적 피로감을 주는 것이 현실이다.
법적 결혼제도는 오직 '남녀 간의 결합'과 '정상 가족'만을 보호할 뿐, 동거, 사실혼, 비혼 출산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제도가 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면서 제도적 보호도 받을 수 있는 대안들이 등장하는데, 한국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발의되고 있고, 프랑스의 경우 '팍스(PACS·시민연대계약)'가 일반적이다.
이 제도들은 두 성인이 함께 살며 서로를 돌보겠다고 합의하면 국가가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 아니라 온전히 두 사람의 관계에만 집중하는 게 특징이다.
법적으로 동거 계약을 맺으면 결혼한 부부처럼 소득세 감면,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수술 동의서 서명권, 주택 임대차 승계권 같은 실질적인 복지와 의료·법적 권리를 보장한다. 전통적 방식과 차이를 생각한다면 복잡한 이혼 소송 없이 한쪽이 해지를 통보하거나 합의하면 비교적 간단하게 관계를 정리할 수 있어 감정적 리스크가 적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태어나는 아이의 과반수가 이 팍스나 비혼 관계에서 태어날 만큼 주류 제도가 되었다. 이 외에도 뜻이 맞는 이들이 모여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인 코하우징(Co-housing)과 컬렉티브 하우스도 인기다. 독립된 방을 보장받으면서, 주방·거실·세탁실 등은 공유하며 함께 식사하고 교류한다.
앞서 설명한 '선택적 싱글맘'과 '자발적 비혼모'처럼 "남편은 필요 없지만 아이는 키우고 싶다"는 여성들이 선택하는 방식으로 결혼 후 출산이란 공식이었다면 이제는 가부장적 갈등을 넘어 바로 '모자가족'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북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이미 합법적이고 흔한 가족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마치며
더 나아가 미래의 사회는 '결혼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신뢰 관계가 있느냐'를 따져 동거 문화가 발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결혼이라는 법적 구속을 떠나 서로가 원할 때 동거하고 헤어지는 것도 자유롭다면 진정한 ‘자유 연애'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법적 계약이나 사회적 의무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현재 느끼는 사랑과 존중'만을 느끼게 되고 상대방을 구속하려는 소유욕이 사라지면서 매 순간 서로를 존중하는 진정한 '자유 연애'가 실현되는 것이다. 또 구속이 없으니 질투와 집착이 감소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얻게 된다.
파트너가 다른 사람과 교감하거나 사랑을 나누는 것을 질투하는 대신, 파트너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높은 의식(비소유의 사랑)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는 이별로 인한 폭력, 가정불화, 정서적 고통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동거 체제 속에서, 만약 두 사람이 헤어진다면 아이는 누가 어떻게 양육해야 할까? 양육을 둘 다 원치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제도가 사라지면 아이들을 방치할 것이라 우려한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들이 올바로 자랄 때까지 특정 부부에게 종속되는 대신, 더 잘 훈련된 사회 조직이나 적합한 양육권자가 보호하고 사랑을 주는 것이 좋다. 혈연에 얽매이지 않고, 체계적인 교육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더 넓은 시야와 자유로운 개성을 지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
전통적인 결혼과 가족 제도는 종종 개인에게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며, 이로인해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이나 성적 행복을 억압당한다. 양육 환경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어떤 선택이 아이의 정신적·육체적 성장과 행복에 가장 이로운가"이다. 불행한 부모 손에 억지로 키워지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된다면, 부모의 강요나 유도 없이 누구와 함께 살고 싶어 하는지 그 선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고, 아이가 스스로 내린 선택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지지해 주는 것이 아이를 위해 더 좋은 일이다.
만약, 부모가 양육을 원치 않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을 때 부모에게 억지로 묶어두는 것은 아이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따라서 사회가 전적으로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책임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의 제한적인 아동 복지 시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와 교육 분야에서 전문적 자질을 갖추고 풍부한 애정을 줄 수 있는 고도화된 사회적 조직을 말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뒷받침될 때, 성인들의 자유로운 만남과 이별 과정에서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정서적 혼란과 불안정함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결혼제도는 더 이상 인간의 자유로운 사랑을 구속하고 집착과 질투를 낳는 제도에 관심이 없다. 오직 '사랑'에 의해서 결합하고, 사랑이 식으면 아무런 법적·감정적 구속 없이 헤어질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책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제도적으로 억압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아이를 낳기로 결정할 때도 훨씬 신중해질 것이다.
palms@ coconutpalms.info
참고: KN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