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분쟁"을 미리 막을 수는 없을까?
분쟁 지역 개입 사례를 보면 인도적 개입이냐 자국 이익을 위한 개입이냐 등을 따진다.
평화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국가의 허가 없이 타국의 주민에게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행위는 분명 침략자들이 하는 행위이다. 인도적 개입이 아니라 폭력이며 존중하지 않는 행위이다.
말은 거창하게 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건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다 너를 위한 것’이라거나 ‘너를 보호하기 위해’라는 변명을 한다.
2001년 9.11 테러로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힌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전면전까지 벌였다.
빈 라덴의 행위는 잘못되었지만, 미국이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생각된다. 당시 인터뷰에서 빈 라덴은 1982년 레바논 내전 당시 이스라엘 공군이 미제 무기로 베이루트 도심 고층 건물들을 사정없이 폭격하는 것을 TV로 눈으로 직접 보면서 이스라엘의 후원자인 미국의 마천루, 국방부 청사, 백악관 등 미국 건물들에 대한 공격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처음부터 분쟁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9.11 테러는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침략자들도 어떻게 보면 “범죄의 피해자들”이다.
물론 싸움의 불씨는 언제나 사소한 곳에서 시작한다. 1939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부터 시작한 제2차 세계대전은 약 50개국에 달하는 대륙의 모든 주요 국가가 참전했으며, 인류 사상 가장 거대한 병력의 집결과 손실이 발생했고, 폭격과 인종청소 등에 의한 민간인 피해도 역대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불안정한 국제 질서, 1930년대 대공황, 그리고 독일인들을 가장 분노하게 한 것은 전쟁 이전 영토와 인구의 12%를 강제로 신생국 및 승전국들에게 떼어서 넘긴 조치였다.
무엇이 이토록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일까?
싸움의 불씨는 언제나 “두 사상”이 부딪혀 발생한다. 더 정확히는 가치관의 차이, 이해관계의 충돌, 아니면 관점의 차이나 신념의 차이 등으로 작은 갈등에서 시작한다. 어쨌든 두 가치관의 차이가 “두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충돌”은 단순히 의견 차이를 넘어 감정이 곪아 깊어지고 되돌릴 수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든다.
작은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 한순간에 감정이 폭발하듯 전쟁도 이와 같을 것이다.
“정의”라는 게 사전적 의미로 ‘진리에 맞게 공정하고 올바른 도리’라고 되어 있다. 정의를 외치면서 말과는 다르게 구밀복검(口蜜腹劍)의 마음으로 복수할 기회만 엿보는 자세라면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한편, 친족이나 친구 관계에 있는 사람이 같은 공간에 생활하면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될 수 없다. 공용 생활이란 프라이버시, 주방, 화장실 등 규칙과 존중, 배려가 없으면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늦은 밤 피곤에 예민해져 있는데, 갑자기 불을 켠다든지, 시끄럽게 음악을 틀거나 아니면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 때문에 예민해지기 쉽다. 파티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계속 파티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고, 세탁기가 한 대밖에 없는데, 원할 때 바로바로 세탁을 할 수는 없다. 이런 불편 때문에 독립해서 혼자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낯선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낯선 타인과 살 곳을 같이 만드는 것은 단점 보다는 장점이 더 많아 공동 주거가 인기라고 한다.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의 문제만 남아있을 뿐이다.
어쨌든 모두가 상대의 공간을 존중해주면 좋겠지만 지나치게 개입해 풍파를 일으키기도, 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역사가 말해주듯 원치 않은 식민지화는 다른 지역이나 국가를 강제로 통제하려 들 때 강압적이 되고, 지역의 고유한 언어, 종교, 관습 등 주민들의 동의 없이 경제와 정치적 압박을 받거나 무시되는 게 일반적이다.
국가 분쟁 사례를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시리아 내전, 미얀마 내전, 나이지리아 분쟁 등이 있으며, 한국의 경우는 독도 분쟁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진행 중인 분쟁도 꽤 된다.
사실 “분쟁”이란 게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다. “다툼“이란 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욕심“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분쟁을 얼마나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누가 유리하고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이게 ”지성”의 본질이다.
물론 ”분쟁 조정 위원회“가 존재하지만 역시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빨리! 신속하게!“가 아니라 똑같은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소화를 목표로 조율하는 것이다.
오래전에 AWS 계정이 탈취당한 적이 있었다. 단 며칠 만에 한화로 약 2,200만 원이란 요금이 청구되었다. 다행히 사정을 예기해서 요금 전액을 감면받을 수 있었는데, 아마존의 입장에서 당장은 손실이 되나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분명 국내와는 다른 분위기이다.
직장인들 사이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회사에서 근로계약서를 아예 꺼내지 않거나 계속 미뤄서 서로가 피해를 받는 일이 발생한다. 다른 직원들 역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채 계속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며, 분쟁이 발생하면 그제야 근로계약서를 요구한다.
하지만 분쟁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예방할 수도 있겠다. 신용카드의 경우 사고예방을 위해 해외이용 잠금 서비스, 전자금융사기 예방서비스 등 카드 이용시 즉시 알림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분쟁을 줄일 수 있다. 또, 고객정보를 볼 수 있는 권한을 관계자로 제한하고 수정, 삭제, 변경을 요하는 경우에는 직급이 높은 상급자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에게 카드 양도를 금지한다든지 여러 가지 안전조치를 취하면 고객에게도 믿음을 줄 수 있다.
분쟁이라는 게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가족, 친구, 주변, 조직 어디에서나 말이다.
혹여나 주변에 풍파를 일으키는 인연이 있다면 사전에 미리 예방하여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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