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영국 연구팀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실험 결과에서 53세 여성의 피부세포를 23세로 되돌렸다고 밝혔다. 노화를 늦추는 것을 넘어 되돌리는 '역노화(Age Reversal)' 기술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임상 문턱을 넘으면서다.
역노화가 뭐길래... 늙은 세포를 젊게인체 임상 중
역노화는 말 그대로 노화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안티에이징(항노화)'이나 '저속 노화'는 노화의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주름을 개선하거나, 대사를 관리하거나, 질병 발생 시점을 뒤로 미루는 식이다. 시간의 흐름을 완만하게 만드는 '감속'의 개념이었다.
역노화는 '리셋(reset)'을 목표로 한다. 늙은 세포의 시계를 되감아 20~30대 수준으로 기능을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핵심 개념은 '후성유전적 재프로그래밍(epigenetic reprogramming)이다. 원리를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DNA를 악보라고 하자. 음표(유전정보)는 평생 거의 변함이 없다. 바뀌는 건 악보 위에 붙은 '여기는 크게, 여기는 쉬어가라는 연주 지시다. 세포 안에서 이 지시 역할을 하는 것이 DNA에 달라붙는 화학 표지다. 이를 메틸기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지시하는 메틸기가 하나둘 어긋나고 뒤엉킨다. 학계가 '후성유전적 잡음'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악보는 멀쩡한데 연주가 엉망이 되는 것, 이 과정이 노화의 원리라는 게 연구팀의 가설이다. 즉, 역노화는 음표를 고치는 기술이 아니다. 뒤엉킨 연주 지시만 젊은 시절 상태로 되돌리는 기술이다.
이론적 출발점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다 자란 세포에 단 4개의 특정 유전자(Oct4.Sox2·K1f4·c-Myc)를 주입하면 세포가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초기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배아를 쓰지 않고도 어떤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유도만능 줄기세포(iPSC)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야마나카 교수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4개 유전자는 '야마 나카인자'라고 명명했다.
이후 지난 10여년간 역노화 관련 후속 연구와 동물 실험이 이어졌다.
선두 주자는 2017년 데이비드 싱클레어 하버드대 교수가 공동 창업한 '라이 프바이오사이언스(Life Biosciences)’다. 창업 3년 뒤, 싱클레어 교수 연구팀은 하버드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야마나카 인자 중 암을 유발할 수 있는 C-Myc를 뺀 3개를 생쥐의 망막 신경 절세포에 전달한 결과, 손상된 시신경 섬유가 다시 자라났고, 녹내장 모델 생쥐와 늙은 생쥐의 시력이 회복됐다는 내용이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늙은 조직도 젊은 시절의 후성유전 정보를 기록처럼 간직하고 있으며, 이를 다시 꺼내 쓰면 조직 기능을 되살릴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2022년에는 노화 전문기업 '알토스 랩스(Altos Labs)'가 참전하며 시장이 확 커졌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등 세계적인 투자자 후원으로 '30억 달러(약 4조원)'라는, 바이오 스타트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초기 자금을 들고 출범했다. 야마나카 인자를 발견한 야 마나카 교수도 수석 과학자문으로 합류했다.
두 회사 전략은 다르다. 알토스랩스가 기초과학을 충분히 다진 뒤 임상에 진입하겠다는 '정공법'이라면, 라이프바이오 사이언스는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적응증부터 임상을 진행하는 '속도전'을 택했다. 지난 1월 역노화 후보물질 'ER- 100'를 인체에 테스트하는 임상시험계획(IND)을 미국 FDA로부터 승인받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회사 측은 이를 "부분 후성유전 재프로그래밍을 이용한 세포 회춘 치료제가 사람 임상에 진입한 사상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현재 진행 중인 첫 임상 대상은 '눈'이다. 1상 시험은 개방각녹내장(OAG)과 비동맥성 전방허혈성 시신경 병증(NAION)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과 내약성, 면역 반응, 시력 개선 효과를 평가한다. 이들 시신 경질환은 시각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망막 신경절세포가 죽으면서 되돌릴 수 없는 시력 손상을 일으킨다. NAION은 승인된 치료제가 아예 없고, 녹내장 치료제도 안압만 낮출 뿐 신경퇴행 자체는 막지 못해 '미충족' 수요가 크다는 평가다.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6월 첫 환자에 대한 투약을 마쳤다고 밝혔다. 녹내장 환자의 안구에 직접 주사하는 방식이었다. 인체에서 노화를 되돌릴 수 있는지, 인류가 처음 확인에 나선 것이다.
이 밖에도 노화 기술을 연구하는 기업들은 적잖다. 오픈AI 최고경영자 (CEO) 샘 올트먼이 1억8000만달러를 투자해 2022년 출범한 '레트로바이오사이언스는 조혈모세포 재프로그래밍과 자가포식(오토파지) 활성화를 앞세워 '건강 수명 10년 연장을 목표로 내걸었다.
코인베이스 창업자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2021년 '리미트(NewLimit)'를 설립, 간세포와 면역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4억3500 만달러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하며 내년 첫 인체 임상을 준비 중이다. 영국 케 임브리지의 시프트바이오사이언스는 야 마나카 인자 대신 '더 안전한 회춘 유전자'를 인공지능(AI)으로 찾고 있다. 우리나라도 노화 산업에 적극 뛰어 들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6월 10일 '생체노화 리프로그래밍 원천기술개발사업' 추진을 위한 사업 착수 회의를 개최했다. 향후 5년간 475억원을 투입해 생체노화 측정과 제어 기술 확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노화를 질병과 유사한 상태로 정의하고 세포와 조직의 노화 정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지표를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세포의 노화 상태를 규정하는 '고도노화' 개념을 세계 최초로 정립, 이를 바탕으로 노화를 측정·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이주헌 과기정통부 첨단바이오기술과장은 "노화의 근본 원리를 규명하고 노화된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기술 개발은 초고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핵심 연구개발 과제"라며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고 수준의 노화 연구 역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역노화 관련 연구 및 투자가 확대하고 있다.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고등연구계획국(ARPA-H)은 지난 2월 '프로스퍼(PROSPR)' 사업을 통해 7개 연구팀에 5년간 최대 1억44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단, 세포를 되돌리는 기술이 아니라 노화를 규제당국이 인정하는 '임상시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노화의 진행을 수십년 기다리지 않고 몇 년 안에 측정할 수 있는 대리 지표(바이오 마커)를 찾는 데 자금이 집중됐다. 노화가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역노화 과제는 FDA 승인 0건... 빅파마도 실패 연속
노화가 세계 바이오 기업들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올랐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지난 10여년간 글로벌 빅파마와 빅테크들이 노화 연구에 매진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낸 곳은 거의 없다. FDA 승인에 도달한 후보물질도 단 한 건도 없다.
재프로그래밍 이전에 주목받은 접근법은 '세놀리틱(senolytics)'이다. 나이가 들면 분열을 멈추고도 죽지 않은 채 염증 물질을 뿜어내는 노화세포(일명 좀비 세포)'가 쌓이는데, 이를 골라 제거하자는 발상이었다. 대표 주자였던 미국 유니티바이오테크놀로지는 제프 베이조스와 피터 틸의 투자를 받아 2018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그러나 주력 후보물질이 지난해 임상에서 기존 표준치료제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통계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서 무너졌다. 발표 당일 주가는 33% 폭락했고, 회사는 지난해 직원들을 내보내고 사실상 문으 닫았다.
2013년 구글이 세운 노화 연구기업 '칼리코(Calico)'도 답을 찾지 못했다. 칼리코는 2014년 세계 매출 1위 의약품 '휴미라'를 배출한 미국 빅파마 '애브비'와 15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공동 연구 계약을 맺었다. 노화와 신경퇴행성 질환을 겨냥한 신약을 함께 개발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11년간 다섯 차례 임상을 진행하는 동안 상업적 성과는 없었다. 루게릭병 치료 후보물질마저 임상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자, 애브비는 지난해 11월 협력 종료를 통보했다. 과학자 약 100명은 감원 대상에 올랐다.
유니티에 투자했던 베이조스가 2022년 알토스랩스에 다시 투자하며 자본의 무게중심이 세놀리틱에서 재프로그래밍으로 옮겨가고 있다. 단, 재프로그래밍도 야마나카 인자의 부작용을 해결해야 한다.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재프로그래밍은 본질적으로 세포를 배아 상태에 가깝게 만드는 과정인데, 이 과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세포가 무한 증식하며 종양이나 암세포로 변할 수 있다. 실제로 야마나카 인자를 계속 발현시키면 생쥐에서 기형종(테라토마)이 생기는 사례가 종종 확인됐다.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가 암 유발 위험이 큰 c-Myc를 빼고 3개 인자만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세계 곳곳에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일례로 영국 배브라함연구소의 볼프 라이크 교수팀은 부분 재프로그래밍을 시도했다. 53세 여성의 피부세포에 야마나카 인자를 주입해 완전 초기화하는 데 원래 50일이 걸리는데, 이를 13일 만에 중단시킨 것,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세포의 후성유전 시계와 유전자 발현 양상이 약 30년 젊은, 즉 23세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실험 세포는 콜라겐을 더 많이 만들고 상처 치유 반응도 빨라지는, 젊은 피부의 특징을 보였다. 다만 이는 배양접시 위 세포에서 확인된 결과다. 인체에선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후속 연구가 더 필요하다.
이 밖에도 장기간 재프로그래밍 인자를 발현시키면 간과장, 일부 뇌세포에서 독성이 생기는 문제가 보고된다. 세포를 얼마나 '어느 세기로 '언제 멈춰 되돌릴지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것이 과제인 셈이다. 알토스랩스가 임상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포 재프로그래밍 자체는 이미 실험실에서 구현 가능하지만, 부작용을 잡는 데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
한국바이오협회는 '노화 기술: 후성유전적 리프로그래밍' 보고서를 통해 "현재 대부분의 후성유전 리프로그래밍 연구는 야마나카 인자에 기반하고 있다"며 "하지만 유전자 치료는 전달의 안전성과 효율성 문제로 한계가 있으므로, 화합물을 활용한 세포 리프로그래밍이나 합성생물 학의 활용 등과 같은 대안적 접근법이 매우 유망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장벽은 노화를 공식적으로 '질병'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보건당국의 보수적인 태도다. 노화는 아직 세계 어느 보건당국에서도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노화를 되돌리는 약을 만들어도 건강보험을 적용받거나 신약 허가를 받을 만한 적응증이 없다는 얘기다.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가 첫임상 대상으로 녹내장과 NAION이라는 구체적 안 질환을 고른 것도, 미국 ARPA-H가 노화를 몇 년 안에 측정 할 수 있는 '대리 바이오마커 개발에 자금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라이프바 이오사이언스의 첫 임상이 성공한다 해도, '회춘'이라는 단어가 과학적으로 정당화되기까지는 험난한 검증 과정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출처: 이코노미 2026-07

